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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잘못된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대하여”라는 글을 세 편에 걸쳐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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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고만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것을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으로 만들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습니다. 원하는 차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여행자로 방문해 좋은 시간을 가진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환상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 상대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결혼이 어떤 사람과 보낸 행복을 보장해주는 장치라고 기대합니다. 청혼할 때 느꼈던 둥둥 떠다니는 듯한 행복을 평생토록 옆에 두기 위해 결혼을 하는 거죠.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모터보트에 앉아 석양이 내려앉은 바다를 바라보며 작은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아름다운 저녁을 하고, 따스한 스웨터를 두르고 행복하던 그 기분을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혼과 이 감정에는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그 행복한 감정은 베네치아, 석양이라는 시간, 휴가, 좋은 저녁 식사, 상대방과 보낸 꿈만 같던 두 달간의 시간이 자아낸 거지 결혼이라는 제도는 이 행복을 증진할 수도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결혼은 행복한 순간을 보존해주지 않습니다. 이 행복은 다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결혼은 되려 두 사람의 관계를 다른 형태로 바꾸어놓을 뿐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도시 외곽으로 이사가고, 출퇴근이 길어지고, 어린 아이들을 키워야하는 책임감만 늘어가죠.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공통점이라고는 동반자뿐입니다. 이 동반자가 다른 상황으로 넘어갈 때 그리고 굳이 가져가고 싶지 않은 요소였을 수도 있죠.
19세기의 인상파 화가들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변화에 대한 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존재는 찰나일 뿐이며 행복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작은 순간에 감사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죠. 프랑스 시골을 그린 시슬리의 그림은 아름답게 변화하는 사물을 표현합니다. 석양 무렵 햇살이 풍경으로 간신히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햇살은 앙상한 가지를 부드럽게 내리쬡니다. 눈과 잿빛 담장은 차분한 조화를 이루죠. 추위도 상관 없고, 신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몇 분 후면 어두운 밤이 하늘을 덮을 겁니다.
인상주의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찰나에만 존재하며 곧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몇 년보다 몇 분동안 지속될 행복에 환희했죠. 그들의 그림에서 눈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곧 녹아없어질 겁니다. 아름다운 하늘은 곧 어두워질겁니다. 이러한 예술은 예술에서만이 아니라 찰나에 존재하는 행복을 받아들이고 인지하게 도와줍니다.
인생의 절정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행복은 몇 년이라는 단위로 찾아오지 않죠. 인상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는 매일에 존재하는 찰나의 천국에 감사하고, 이를 영원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그만두어야합니다. 결혼이라는 형태로는 더더욱 아니지요.

여덟 번째, 우리는 우리가 특별하다고 믿습니다.
결혼에 대한 통계는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처참하게 파탄 난 결혼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죠. 우리는 친구들이 시도했다 실패하는 걸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결혼이 매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미 엄청난 확률 게임에서 성공했고, 그러므로 결혼에 실패할 확률도 통계처럼 절반이 아니라 나에게는 훨씬 낮다고 기대하죠. 사랑받는 사람은 이미 백만분의 확률을 뚫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결혼이라는 도박도 해볼 만하게 느껴지는 거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착각이 잘못은 아니지만, 나도 일반적인 운명에 빠질 거라고 예측하고 준비하면 배울 게 많을 겁니다.

아홉 번째, 우리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사랑의 소용돌이에서 수년을 보냈을 겁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만나보고, 연애를 시작했다 헤어지기도 하고, 운명의 상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수없는 파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어떤 시점이 되면 우린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는 건 피곤하고 지치는 정신적 소모를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끝없는 통속극과 방향 없이 그 자리를 맴돌 뿐인 사랑의 열병에도 지쳐버립니다. 인생의 다른 과제들에도 지쳐가지요. 우리는 결혼이 사랑의 피곤함을 끝내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구심, 희망, 두려움, 거절과 배신은 결혼 생활에도 존재합니다. 독신 인생만큼이나 다이나믹한 공간이죠. 결혼은 밖에서나 사건 사고 없이 평화롭고 단순한 일로 보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을 제대로 준비시켜 결혼에 다다르도록 도와주는 건 사회가 교육해야할 책무 중에 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왕조시대의 결혼을 믿지 않습니다. 낭만의 결혼이 가져오는 재앙도 보았죠. 이제, 심리의 결혼을 가르치고 고민해 볼 때입니다.

(알랭 드 보통 블로그, The book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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