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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Gérard DuBois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에는 명백한 장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 이상의 언어를 배우면 새로운 대화와 새로운 경험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그런 장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이중 언어 구사의 이점들 가운데는 이처럼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문제 해결과 같이 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지 능력인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의 경우,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어린이들이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중 언어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아동의 인지 기술뿐 아니라 사회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 결과 두 건을 통해 밝혀졌다.

우선, 시카고대 심리학자 보아즈 케이사르, 조이 리버먼, 사만다 팬과 나의 발달심리학 연구실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지난해 학술 저널 ‘심리 과학(Psychological Science)’을 통해 출간한 연구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어린이들이 하나의 언어만 구사하는 어린이들에 비해 더 뛰어난 소통 능력을 보인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언어적 배경을 지닌 4-6세 미국 어린이들에게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아야만 상대의 말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실험 대상이 된 어린이들에게 한 성인이 “어머나, 작은 차네! 작은 차를 좀 옮겨줄래?”라고 말한다. 이때 아이들은 크기가 서로 다른 장난감 자동차 세 대를 볼 수 있지만, 상대 어른이 가장 작은 자동차를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즉, 어른은 가장 큰 차와 중간 크기의 차만 볼 수 있으니, 어른이 말한 “작은 차”란 아이의 시각에서 중간 크기의 차가 되는 상황이다.

실험 결과 우리는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하나의 언어만을 구사하는 어린이들에 비해 이런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앞서 주어진 과제에 더 잘 대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발화의 내용뿐 아니라 화자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화자가 어떤 뜻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지 등 주변 상황과 맥락에까지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중 언어 환경에 노출된 어린이들은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늘 다른 사람의 시각을 고려해야 하는 사회적 경험을 하고 있다. 즉, 누가 어떤 언어로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누가 어떤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떤 언어가 쓰이는지를 늘 생각해가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조부모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처럼 자신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언어만을 구사하지만 다른 언어에 정기적으로 노출된 어린이들도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어린이들만큼이나 상황 파악 및 대처 능력이 좋았다는 것이다. 즉 사회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 그 자체보다는 여러 언어가 쓰이는 환경에서 자랐는가 여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이 우리의 연구 결과를 보고 이것이 이중 언어 구사 아동들에게서 흔히 발견되었던 뛰어난 인지 능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실험 대상 아동 전체를 대상으로 집행 기능을 테스트하는 표준 인지 능력 검사를 했다. 그 결과 두 개 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은 하나의 언어만 구사하는 아이들에 비해 인지 능력이 더 뛰어났지만, 다른 언어에 주기적으로 노출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언어만 잘 구사하는 어린이들은 딱히 더 뛰어난 인지 능력을 드러내지 못했다. 다중 언어 환경에 노출만 된 아이들의 경우 인지 능력 검사에서는 하나의 언어만 구사하는 어린이들과 같은 결과를 냈지만, 소통 능력을 보는 검사에서는 이중 언어 구사 아동들과 비슷하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능력을 보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인지 능력 이상의 그 어떤 것, 즉 “사회적인 요소”가 가미된 어떤 능력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 나는 동료들과 함께 후속 연구로 다중 언어 노출이 더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곧 학술 저널 ‘발달과학(Developmental Science)’에 소개될 예정이다. 조이 리버먼이 주도하고 케이사르 교수, 심리학자 아만다 우드워드가 참여한 이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말을 거의 할 줄 모르는 생후 14-16개월의 아기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아기들에게 바나나 같은 동일한 물체를 두 개 보여주었다. 그중 하나는 아기와 어른의 시야에 모두 들어오지만, 다른 하나는 아기의 눈에만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이 아기에게 “바나나 달라”고 하면 아기는 바나나 두 개 가운데 아무 쪽이나 집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사회적 맥락을 더 잘 이해하는 아기라면 어른이 볼 수 있는 바나나를 집어 줄 가능성이 높다.

실험 결과 단일 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아기들은 양쪽 바나나에 동일하게 손을 뻗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제2 언어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는 아기들을 포함, 다중 언어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들은 어른이 볼 수 있는 바나나를 집어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의 시각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벌써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언어에 노출되는 경험은 이처럼 사람 간 이해에 필요한 기본적인 스킬들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여러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고 모든 이에게 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연구를 통해 밝혀낸 “사회성 향상”이라는 이점은 말 그대로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언어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만으로도 생길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스스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지만 자녀가 다중 언어 구사의 이점을 누리기를 바라는 부모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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