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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황 지인 2016. 4. 3. 17:36

<마루야마 겐지의 직언…'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도시에서 현실은 분명 혹독했습니다. 시골 또한 도시 이상입니다. 결코 안도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16쪽)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71)가 자국에서 2008년에 출간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바다출판사 펴냄)가 최근 번역돼 나왔다.

1966년 '여름의 흐름'으로 역대 최연소(23세) 아쿠타가와상 수상자가 된 마루야마는 1968년에 '정오이다'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이후 자신도 일본 나가노현 아즈미노로 이주해 올해로 47년째 시골에서 산다.

시골 생활의 쓴맛, 단맛을 다 맛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작가는 이 책에서 시골 생활을 감당한 자로서의 확신으로 귀촌, 귀농을 꿈꾸는 도시 사람들에게 직언을 날린다.

마루야마는 시골 생활의 냉혹한 현실을 낱낱이 열거하며 별 고민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골로 이주하려는 이들의 오만함과 무신경함을 가차없이 꾸짖는다.

먼저 마루야마는 시골로 내려가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도시든, 시골이든 어딜 가든 "힘들고 벅차기 그지없는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16~17쪽)이다.

공기가 맑으니까, 자연이 아름다우니까, 농사를 짓고 싶어서, 인정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서 등의 이유를 대는 사람들에겐 그렇다면 "당신이 멋지게 생각하는 삶을 왜 젊은이들이 저버리고, 당신이 기피하는 도시로 떠나선 정년퇴직해서도 돌아오지 않"(40쪽)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시골이 고요할 때는 농한기뿐이고 그 외 계절은 온갖 농기계가 내는 엔진 소리로 시끄러운 곳이 시골이라는 그의 지적은 시골에 대한 환상을 깨기에 충분하다.

"물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도시의 소음 재앙과 비교하면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시골 소음이 훨씬 더 귀에 거슬리고 숙면을 방해합니다. 고요한 가운데 발생하는 소음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72쪽)

자기 집과 다른 집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아무 때나 찾아와 서슴없이 방으로 들어와서는 집안 내력뿐만 아니라 예금 잔고가 얼마인지까지 파고드는 게 시골 사람이라고 무라야마는 말한다.

이런 이유로 마루야마는 시골살이를 시작할 때 그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는 정도를 미리 정해 두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 미움을 사는 편이 어울리고 나서 미움을 사는 편보다 훨씬 원망이 더 적다는 점입니다. (…)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지 않으면 외로우리라는 약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골 생활은 처음부터 깨끗이 단념해야 할 것입니다."(129~130쪽)

시골에선 도시에 비해 범죄가 적으리란 생각 역시 환상이다. '설마 이런 곳에서' 싶은 산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마루야마는 구체적인 호신법도 제시한다.

강도의 등장에 컹컹 짖어댈 큰 개를 기르고, 강도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집 지을 때 특별히 침실을 견고한 구조로 만들어 요새화하라고 말한다. 한발 나아가 마루야마는 '무기'까지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도움이 될 만한 무기는 창이다.

"문을 부수고 적이 침입하는 순간, 두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분을 토하면서 적의 복부를, 명치 언저리를 노려 기세등등하게 내찌르십시오. 찌른다기보다는 창과 함께 기를 쓰고 덤비는 식의 방법이 효과적입니다."(97쪽)

마루야마가 시골 생활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 아니냐고 느낄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귀농, 귀향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시골에서 살고자 한다면 이러한 불편함을 감내할 만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퇴직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상황에서 도피하듯 시골을 찾지는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 갈피를 못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당신은 늘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어린아이의 정신 그대로 살아왔습니다. 자신을 단련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느닷없이 노후의 세계로 끌려 들어온 것입니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몰골사나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이제 앞으로는 돈과 건강과 배우자의 애정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고민도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강력한 조력자의 존재를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정도로 약한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떠넘기며 살아온 오랜 세월의 계산서를 깔끔히 정산만 하면 거기에서 본래의 진정한 당신이 분명 떠오를 것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 2막입니다. 동물의 한 종으로 태어나 꼭두각시로 살아왔습니다. 후반 인생에서라도 인간으로 살다 죽어 갈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것은 당신이 살아오면서 이룬 가장 큰 공적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산 증거이자 가장 멋진 추억이 될 것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희열도 맛볼 것입니다. 그러자면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결코 묻지 말기 바랍니다. 해답은 당신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192~193쪽)

마루야마의 인생론이 녹아 있는 이 책은 포항에서 목공학교를 운영하며 번역 일도 함께하는 고재운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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